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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올리기전 윗사진과 아랫글은 퍼온글임을 명시하며 윗사진은 지인이신 임정섭 선생님의
사진이며 아랫글은 소리전자 웨스턴 동호회의 글을 퍼왔습니다. 웨스턴 제품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WEC와 증폭기(앰프)
WEC라고 하면 증폭기, WEC라고 하면 진공관, 그리고 WEC라고 하면 토오키 앰프가 연상된다.
그러나, WEC는 ATT 및 벨 시스템 전화회사 등에 시스템,자제, 기기, 건설공사,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회사로써 처음에는 전화를 중심으로하는 정보 산업의 기기들을 가지고 발전을 해왔던 회사이다.
그 발전 과정에서 방송사업, 영화사업, 군수산업 등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우주산업, 에너지산업 등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서 벨연구와 함꼐 탁월한 개발능력, 생산기술을 각각의 분야에서 선두를 점하고 있다. 다만 , ATT그룹의 리더인 ATT 방침에 따라 사업이 너무 확장되어 퇴출 된 분야도 있다. 그렇지만, 퇴출 된 뒤에도 커다란 영향을 여러 분야에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우리들 머리에서 WEC라고 하는 거대한 회사를 생각해 보면 오디오분야는 큰나무의 작은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화산업과 증폭기(앰프들)
WEC가 최초로 실용적으로 사용한 앰프는 전화를하기 위한 중계용 증폭기가 있었다. 전화회선의 거리가 길면 길 수록 감쇠가 크게 되었다. 이것을 해소하기 위한 중계용 증폭기의 출현은 커다란 진보를 하게 되었다. 이 전화기용 중계 증폭기의 필요 주파수 대역은 200Hz-3500Hz였다. 처음에는 VT-1을 사용한 증폭기는 성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전화회선도 두가닥의 회선으로 회선수를 증가시키고, 다음에 반송전송 방식을 채택하여 획기적인 사용 채널수를 증가 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전화회선이 다기능화하면서 전화중계기용 증폭기도 용도별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각각의 용도에 적합한 진공관이 개발 됨에 따라 증폭기(앰프)도 개선을 하게 되었다.
영화산업과 증폭기(앰프들)
바이타폰 토오키 시스템을 개발하여 영화산업에 참여한 WEC는 여기서도 눈부신 업적을 남겨 놓았다.
바이타폰 토오키 시스템의 전신인 루페 골드백 시스템의 경우, 토오키용 음반에 녹음하기 위하여 레코딩 앰프와 상설 영화관에서 토오키 재생용 증폭기가 필요하였다. 또 바이타폰이 토오키 시스템이 되고 녹음방식이 광학식이 되었어도 역시 레코딩앰프와 토오키 재생용 증폭기는 필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토오키용 재생 증폭기로는 86-A 토오키 시스템용 증폭기, 91-B 토오키 시스템용 증폭기가 유명하다.
따라서, 고신뢰 3극 출력관 300A를 개발하게 되었다. 300A(B)의 개발, 개량에 대하여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300B는 보통 91-B 등의 출력관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고신뢰도의 정전압 전원의 레규레이터관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NASA등에 납품 된 300B는 거의가 다 레규레이터관이라고 한다.
그 외의 증폭기(앰프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을때 선박용 확성장치 증폭기, 항공기 탑제용 증폭기, 전쟁용 증폭기, 송신기의 변조용 증폭기 등을 생산하여 군에 납품하였다. 이러한 증폭기는 명령지시, 적에 대한 선전용에 사용하는 등, 음성 주파수 대역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주파수 대역도 전화 중계용 증폭기와 큰 차이가 없는 좁은 대역의 것이었다. 그 외에 총조준용 증폭기, 음파 증폭기, 헬스 신호 증폭기 등 여러가지 군용 증폭기를 개발 생산하였다. 여기서 다루고져 하는 것은 WEC의 증폭기 가운데 방송용 증폭기와 토오키 시스템용 증폭기에 국한한다.
Western Eectric의 역사 (전화, 영화부문)
창립/1869년 그레이 앤드 버튼 전기제조 상점
장소/클리브랜드
설립자/엘리샤 그레이와 노이스 N 버튼
롤 피아노,다이프레임,백열전구 등을 제조
1879년/전화 교환기의 제조(발명자 죠지 W 코이, 최초의 상업 실용기)
1880년/미국 최대의 전화기 제조 회사가 됨(사장 노이스 N 버튼)
1881년/벨 전화회사에 매수됨, 금속회선의 실용화 죤 J 커티스)
1882년/벨 전화회사의 특허를 사용하여 벨 시스템의 기기 공급 회사가 됨
1890년/드라이 코아 케이블의 발명과 제조
1892년/자동 전화 교환기의 제조(발명자 아몬 B 스트로져, 세계 최초의 영업용 자동 전화 교환기를 라포트에 설치)
1907년/WE사와 ATT의 양쪽 기술부문을 통합,연구부문을 창립(벨연구소의 전신, 초대 소장 죤 J. 카디스) 뉴욕시 웨스트 스트리트 463번지
1912년/고진공도 진공관 발명
1913년/진공관을 사용하는 전화용 중계 증폭기의 개발 제조
1918년/VT-1, VT-2의 제조(직열형 3극관)
1919년/WE-211의 제조(50와트 직렬형 송신용 3극관, WE-215의 제조(땅콩형 電池管)
1920년/라디오 실험국의 설치,운영(ZXB, ZXF, ZXJ의 3개의 방송국)
7월 라디오 방송에 대한 RCA 등 3사와 특허에 관한 크로스 라이센스 체결
1922년/송신 출력 500와트의 송신기를 제조, 8월 세계 최초로 상업 방송, 15분간에 50달러.
1923년/본격적인 라디오 전용 스튜디오설치(WEAF 局用, ATT 본사 빌딩의 4층 이하를 사용)
1925년/벨연구소 발족(WE, ATT공동출자) 루우베 골드버그. 토오키 시스템의 발명
1926년/토오키 영화를 발표(바이타폰 시스템), 자회사에 일렉트릭 컬리서치 프로덕트사를 설립(ERPI사,
토오키 ERPI=영화 전문 회사)
1927년/세계 최초의 토오키 영화의 극장 상영(바이타혼 시스템에 의한 재즈 싱거)
1928년/빅 파이브 및 그 외의 영화 제작 회사와 토오키 시스템의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
1935년/토오키 영화산업에서 손을 놓음
1928-1935년/그 동안 라이센스의 계약에 따라 WEC사의 토오키 시스템은 제작 회사와 영화관의 90%
이상에 설비를 납품하면서 토오키 산업의 지배권을 확보
1932년/토오키 시스템용 출력 3극관 WE-300A를 개발 제조
1934년/WE1086 토오키 시스템을 발표(86A 앰프 사용)
1935년/ERPI사를 매각하고 토오키 영화에서 손을 떼었지만 그 후에도 음향 시스템 개발을 하면서
시스템의 공급과 보수를 계속하였다. 이 사업을 알텍사가 계속해서 버튼을 이어받았다
1936년/WE500 토오키 시스템을 발표( 91A 앰프 사용)
WEC의 앰프들
1935년까지 설계 제작 된 각종 앰프의 리스트이다. WE을 좋아하는 매니어들에게 너무나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1086-B 앰프는 91B가 출현 할 때까지 토오키 재생용에 사용 된 앰프 시스템으로 80A 프리와 86A 메인 앰프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판매 되었다. 초기에는 정류관이 개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력관의 플레이트와 그리드를 접속해서 2극관으로 하여 정류관 대신 사용하였다.
초기 앰프에는 205D, 205E 및 211E가 사용 되었다. 253A는 半波 정류관, 274A는 全波 정류관으로 개발 된 진공관이다.
WEC와 영화
1927년 10월 23일 뉴옥 브로드웨이에서 한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것은 워너브러더스사제작의 "재즈 싱거"였다. 무대에서 인기를 누렸던 "알 죤슨"이 이야기를 이 영화는 사회적 사건으로 신문 등에 대서 특필되었다. 이 이야기는 등장 인물이 말을 하는 획기적인 영화라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경영 위기에 쳐하고 있던 영화 제작 회사 워너 브라더스를 소생시켰을 뿐 만아니라 350만 달러의 흥행기록을 올린 대힛트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다음해인 1928년에 발표한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에 사용된 시스템은 "바이타폰"이라는 시스템으로 웨스턴에서 개발한 것이다. 이 영화 이전에도 토오키 영화는 이미 발표는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화는 이 "재즈 싱거"이며, 당시 평론가 벨포드 피튼은 "토오키 시대가 확실히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영화"라고 말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이 1927년 이전에 발표된 "소리가 나오는 영화"를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1900년에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레온 고우몬이 "소리가 나오는 영화"를 발표하였다.
1910년, 독일 오스카 메스테르가 소리가 들어 있는 "녹색의숲"을 발표했다.
1912년에는 미국의 에디슨 컴퍼니가 15분용 단편 영화 "엄마 오리 이야기" 를 제작하였다. 이것은 세계 최초의 뮤지컬 영화이다.
1926년에 WE사의 바이타폰 시스템에 의한 장편영화 "돈 팡"이 발표되었다. 바이타폰을 개발 한 WE사는 최초로 헐리우드에서 영향력이 있는 프로듀서 아돌프 즈커에게 시스템을 가져 갔지만, 그가 속하는 파라마운트와 MGM, 그리고 헐리우드의 대회사들은 이 시스템을 거부하였다. 이유는 스튜디오 녹음 시설을 비롯해, 전국의 수 많은 영화관에 토오키 발성 장치를 설치하지 하여야 하기 때문인데, 이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당시, 파산 직전이었던 워너 브라더스는 이 "바이타폰"을 채용함으로써 기사회생을 노렸다.
워너사는 1926년 8월6일 뉴욕의 워너 극장에서 바이타폰으로 상연하였다. 이 영화는 먼저 미국 영화제작자협회 회장 빌.페이즈의 인사로부터 시작을 하고, 계속해서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미샤 엘만, 요한나 마르치 등의 연주가 계속되고, 마지막으로 음악부문만 토오키로 되어 있는 장편영화 "돈 팡"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1927년 "재즈 싱거"가 등장하였다. 이즈음부터 바이타폰 이외에 포노라마, 그라포폰, 크로노폰 등의 시스템이 발표되었다.
토오키 시스템은 미국에서 영상은 필름에 소리는 레코드에 기록시켜, 상영을 할 때는 두개를 동시에 재생시켰다. 한편 독일에서는 소리를 빛의 신호로 변환을 시켜 필름의 가장자리에 넣는 기술이 1919년에 발명 되었기 떄문에 유럽에서는 처음부터 이 필름 방식을 채용하였다.
필름방식(광학방식)은 완전히 화면과 말이 일치하지만, 레코드 방식은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바이타폰 시스템은 곧 광학방식으로 변환하였다. 그리고, 전화를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은 그레험 빌이었다. 토오키의 경우는 누가 어떤 말을 하였는가?
그것은 "재즈 싱거" 의 주인공 쟈크 코린(배우 알 죤슨)이 10초정도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 Wait a minute! Wait a maite!
You ain't hear nothin' yet,
Wait a minute, I tell ya,
You ain't hear nothin' !"
알 죤슨의 이야기는 단 10초에 지나지 않지만, 이 말이 영화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단 10초정도의 독백은 1940년에 제작 된 영화 "죨슨 이야기"에서 다시 재현을 하였다.
참고로 번역본은 MJ(무선과 실험)를 출판하고 있는 誠文堂新光社에서 발행한 "웨스턴 일렉트릭 硏究"를 참조하였습니다.
> 실은 걱정이 있는데 번역 한 내용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족 한 점이 있어도 넓으신 양해를 부탁드리며 여러분의 많은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끝가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WE에 관한 좋은 글들이 아직 많이 있는데 기회가 있는데로 번역을 할 까 합니다.
그리고 WWW.audiomusiclife.com에 오셔도 같은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이며 아랫글은 소리전자 웨스턴 동호회의 글을 퍼왔습니다. 웨스턴 제품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WEC와 증폭기(앰프)
WEC라고 하면 증폭기, WEC라고 하면 진공관, 그리고 WEC라고 하면 토오키 앰프가 연상된다.
그러나, WEC는 ATT 및 벨 시스템 전화회사 등에 시스템,자제, 기기, 건설공사,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회사로써 처음에는 전화를 중심으로하는 정보 산업의 기기들을 가지고 발전을 해왔던 회사이다.
그 발전 과정에서 방송사업, 영화사업, 군수산업 등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우주산업, 에너지산업 등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서 벨연구와 함꼐 탁월한 개발능력, 생산기술을 각각의 분야에서 선두를 점하고 있다. 다만 , ATT그룹의 리더인 ATT 방침에 따라 사업이 너무 확장되어 퇴출 된 분야도 있다. 그렇지만, 퇴출 된 뒤에도 커다란 영향을 여러 분야에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우리들 머리에서 WEC라고 하는 거대한 회사를 생각해 보면 오디오분야는 큰나무의 작은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화산업과 증폭기(앰프들)
WEC가 최초로 실용적으로 사용한 앰프는 전화를하기 위한 중계용 증폭기가 있었다. 전화회선의 거리가 길면 길 수록 감쇠가 크게 되었다. 이것을 해소하기 위한 중계용 증폭기의 출현은 커다란 진보를 하게 되었다. 이 전화기용 중계 증폭기의 필요 주파수 대역은 200Hz-3500Hz였다. 처음에는 VT-1을 사용한 증폭기는 성능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전화회선도 두가닥의 회선으로 회선수를 증가시키고, 다음에 반송전송 방식을 채택하여 획기적인 사용 채널수를 증가 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전화회선이 다기능화하면서 전화중계기용 증폭기도 용도별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리고 각각의 용도에 적합한 진공관이 개발 됨에 따라 증폭기(앰프)도 개선을 하게 되었다.
영화산업과 증폭기(앰프들)
바이타폰 토오키 시스템을 개발하여 영화산업에 참여한 WEC는 여기서도 눈부신 업적을 남겨 놓았다.
바이타폰 토오키 시스템의 전신인 루페 골드백 시스템의 경우, 토오키용 음반에 녹음하기 위하여 레코딩 앰프와 상설 영화관에서 토오키 재생용 증폭기가 필요하였다. 또 바이타폰이 토오키 시스템이 되고 녹음방식이 광학식이 되었어도 역시 레코딩앰프와 토오키 재생용 증폭기는 필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토오키용 재생 증폭기로는 86-A 토오키 시스템용 증폭기, 91-B 토오키 시스템용 증폭기가 유명하다.
따라서, 고신뢰 3극 출력관 300A를 개발하게 되었다. 300A(B)의 개발, 개량에 대하여 다음에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300B는 보통 91-B 등의 출력관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고신뢰도의 정전압 전원의 레규레이터관으로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NASA등에 납품 된 300B는 거의가 다 레규레이터관이라고 한다.
그 외의 증폭기(앰프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였을때 선박용 확성장치 증폭기, 항공기 탑제용 증폭기, 전쟁용 증폭기, 송신기의 변조용 증폭기 등을 생산하여 군에 납품하였다. 이러한 증폭기는 명령지시, 적에 대한 선전용에 사용하는 등, 음성 주파수 대역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주파수 대역도 전화 중계용 증폭기와 큰 차이가 없는 좁은 대역의 것이었다. 그 외에 총조준용 증폭기, 음파 증폭기, 헬스 신호 증폭기 등 여러가지 군용 증폭기를 개발 생산하였다. 여기서 다루고져 하는 것은 WEC의 증폭기 가운데 방송용 증폭기와 토오키 시스템용 증폭기에 국한한다.
Western Eectric의 역사 (전화, 영화부문)
창립/1869년 그레이 앤드 버튼 전기제조 상점
장소/클리브랜드
설립자/엘리샤 그레이와 노이스 N 버튼
롤 피아노,다이프레임,백열전구 등을 제조
1879년/전화 교환기의 제조(발명자 죠지 W 코이, 최초의 상업 실용기)
1880년/미국 최대의 전화기 제조 회사가 됨(사장 노이스 N 버튼)
1881년/벨 전화회사에 매수됨, 금속회선의 실용화 죤 J 커티스)
1882년/벨 전화회사의 특허를 사용하여 벨 시스템의 기기 공급 회사가 됨
1890년/드라이 코아 케이블의 발명과 제조
1892년/자동 전화 교환기의 제조(발명자 아몬 B 스트로져, 세계 최초의 영업용 자동 전화 교환기를 라포트에 설치)
1907년/WE사와 ATT의 양쪽 기술부문을 통합,연구부문을 창립(벨연구소의 전신, 초대 소장 죤 J. 카디스) 뉴욕시 웨스트 스트리트 463번지
1912년/고진공도 진공관 발명
1913년/진공관을 사용하는 전화용 중계 증폭기의 개발 제조
1918년/VT-1, VT-2의 제조(직열형 3극관)
1919년/WE-211의 제조(50와트 직렬형 송신용 3극관, WE-215의 제조(땅콩형 電池管)
1920년/라디오 실험국의 설치,운영(ZXB, ZXF, ZXJ의 3개의 방송국)
7월 라디오 방송에 대한 RCA 등 3사와 특허에 관한 크로스 라이센스 체결
1922년/송신 출력 500와트의 송신기를 제조, 8월 세계 최초로 상업 방송, 15분간에 50달러.
1923년/본격적인 라디오 전용 스튜디오설치(WEAF 局用, ATT 본사 빌딩의 4층 이하를 사용)
1925년/벨연구소 발족(WE, ATT공동출자) 루우베 골드버그. 토오키 시스템의 발명
1926년/토오키 영화를 발표(바이타폰 시스템), 자회사에 일렉트릭 컬리서치 프로덕트사를 설립(ERPI사,
토오키 ERPI=영화 전문 회사)
1927년/세계 최초의 토오키 영화의 극장 상영(바이타혼 시스템에 의한 재즈 싱거)
1928년/빅 파이브 및 그 외의 영화 제작 회사와 토오키 시스템의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
1935년/토오키 영화산업에서 손을 놓음
1928-1935년/그 동안 라이센스의 계약에 따라 WEC사의 토오키 시스템은 제작 회사와 영화관의 90%
이상에 설비를 납품하면서 토오키 산업의 지배권을 확보
1932년/토오키 시스템용 출력 3극관 WE-300A를 개발 제조
1934년/WE1086 토오키 시스템을 발표(86A 앰프 사용)
1935년/ERPI사를 매각하고 토오키 영화에서 손을 떼었지만 그 후에도 음향 시스템 개발을 하면서
시스템의 공급과 보수를 계속하였다. 이 사업을 알텍사가 계속해서 버튼을 이어받았다
1936년/WE500 토오키 시스템을 발표( 91A 앰프 사용)
WEC의 앰프들
1935년까지 설계 제작 된 각종 앰프의 리스트이다. WE을 좋아하는 매니어들에게 너무나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1086-B 앰프는 91B가 출현 할 때까지 토오키 재생용에 사용 된 앰프 시스템으로 80A 프리와 86A 메인 앰프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판매 되었다. 초기에는 정류관이 개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력관의 플레이트와 그리드를 접속해서 2극관으로 하여 정류관 대신 사용하였다.
초기 앰프에는 205D, 205E 및 211E가 사용 되었다. 253A는 半波 정류관, 274A는 全波 정류관으로 개발 된 진공관이다.
WEC와 영화
1927년 10월 23일 뉴옥 브로드웨이에서 한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그것은 워너브러더스사제작의 "재즈 싱거"였다. 무대에서 인기를 누렸던 "알 죤슨"이 이야기를 이 영화는 사회적 사건으로 신문 등에 대서 특필되었다. 이 이야기는 등장 인물이 말을 하는 획기적인 영화라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경영 위기에 쳐하고 있던 영화 제작 회사 워너 브라더스를 소생시켰을 뿐 만아니라 350만 달러의 흥행기록을 올린 대힛트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다음해인 1928년에 발표한 제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에 사용된 시스템은 "바이타폰"이라는 시스템으로 웨스턴에서 개발한 것이다. 이 영화 이전에도 토오키 영화는 이미 발표는 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화는 이 "재즈 싱거"이며, 당시 평론가 벨포드 피튼은 "토오키 시대가 확실히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영화"라고 말했던 영화이기도 하다. 이 1927년 이전에 발표된 "소리가 나오는 영화"를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1900년에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레온 고우몬이 "소리가 나오는 영화"를 발표하였다.
1910년, 독일 오스카 메스테르가 소리가 들어 있는 "녹색의숲"을 발표했다.
1912년에는 미국의 에디슨 컴퍼니가 15분용 단편 영화 "엄마 오리 이야기" 를 제작하였다. 이것은 세계 최초의 뮤지컬 영화이다.
1926년에 WE사의 바이타폰 시스템에 의한 장편영화 "돈 팡"이 발표되었다. 바이타폰을 개발 한 WE사는 최초로 헐리우드에서 영향력이 있는 프로듀서 아돌프 즈커에게 시스템을 가져 갔지만, 그가 속하는 파라마운트와 MGM, 그리고 헐리우드의 대회사들은 이 시스템을 거부하였다. 이유는 스튜디오 녹음 시설을 비롯해, 전국의 수 많은 영화관에 토오키 발성 장치를 설치하지 하여야 하기 때문인데, 이 시스템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당시, 파산 직전이었던 워너 브라더스는 이 "바이타폰"을 채용함으로써 기사회생을 노렸다.
워너사는 1926년 8월6일 뉴욕의 워너 극장에서 바이타폰으로 상연하였다. 이 영화는 먼저 미국 영화제작자협회 회장 빌.페이즈의 인사로부터 시작을 하고, 계속해서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미샤 엘만, 요한나 마르치 등의 연주가 계속되고, 마지막으로 음악부문만 토오키로 되어 있는 장편영화 "돈 팡"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1927년 "재즈 싱거"가 등장하였다. 이즈음부터 바이타폰 이외에 포노라마, 그라포폰, 크로노폰 등의 시스템이 발표되었다.
토오키 시스템은 미국에서 영상은 필름에 소리는 레코드에 기록시켜, 상영을 할 때는 두개를 동시에 재생시켰다. 한편 독일에서는 소리를 빛의 신호로 변환을 시켜 필름의 가장자리에 넣는 기술이 1919년에 발명 되었기 떄문에 유럽에서는 처음부터 이 필름 방식을 채용하였다.
필름방식(광학방식)은 완전히 화면과 말이 일치하지만, 레코드 방식은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바이타폰 시스템은 곧 광학방식으로 변환하였다. 그리고, 전화를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은 그레험 빌이었다. 토오키의 경우는 누가 어떤 말을 하였는가?
그것은 "재즈 싱거" 의 주인공 쟈크 코린(배우 알 죤슨)이 10초정도 아래와 같이 이야기를 하였다.
" Wait a minute! Wait a maite!
You ain't hear nothin' yet,
Wait a minute, I tell ya,
You ain't hear nothin' !"
알 죤슨의 이야기는 단 10초에 지나지 않지만, 이 말이 영화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단 10초정도의 독백은 1940년에 제작 된 영화 "죨슨 이야기"에서 다시 재현을 하였다.
참고로 번역본은 MJ(무선과 실험)를 출판하고 있는 誠文堂新光社에서 발행한 "웨스턴 일렉트릭 硏究"를 참조하였습니다.
> 실은 걱정이 있는데 번역 한 내용이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족 한 점이 있어도 넓으신 양해를 부탁드리며 여러분의 많은 조언을 부탁 드립니다.
끝가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WE에 관한 좋은 글들이 아직 많이 있는데 기회가 있는데로 번역을 할 까 합니다.
그리고 WWW.audiomusiclife.com에 오셔도 같은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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